동국대 총동창회
 
 
 

우리는 그러나, 4.19 이후 - 김창범

최고관리자 | 2018.04.04 12:06 | 조회 928

   우리는 그러나, 4.19 이후                               


                                    김 창 범(국문67)


우리는 그러나

시청 황금빛 문앞을 지나오면서

프라스틱 장미꽃을 시민에게 바치는

지하도를 지나

오면서 광화문 비각 바로 밑을 돌아

오면서


술주정을 하면서

술주정이 되지 않는다고 또 마시고 나와

이번에는 정말로 술주정이 되라고 울어

가면서

죽이면서 노랗게 아주 노오랗게 죽이면서

자유가 안되면 참새가 되라고 참새 꽁지라도

되라고 아시아 식으로 아프리카 식으로

욕정을 죽이면서 하하하 반항을 죽이면서


인쇄소에서 골목에서 버스 뒷자리에서 하숙방에서

우리가 지껄이는 말

우리가 숨쉬는 말 친구여 근질거리는 말

미치는 말 곯아터지는 말 싱싱한

말은 모조리 쓰레기통 속에 뱉아 버리면서


질겅질겅 껌을 씹듯이 신문에 코를 풀면서

신나는 쑈, 온통 미치라고 흔들어주는 엉덩이를 보면서 음탕하게

음탕하게 스페인 내란을 격찬하면서

시민회관 구석에 킥킥거리면서 인기

코메디언이 뿌리는

국산 만병통치약 따위나 깨물어보면서


우리는 그러나 남몰래 앓아가면서

끙끙 앓는 것이 아니라 썰렁한 하숙방

뒤에서 매일매일

술을 퍼 마시듯이 간장경화증과 싸우면서

아시아 식으로 아프리카 식으로 투쟁하면서


밤 열두시만 되면 화해를 하고

동침을 하면서

다시 오전부터 더는 속지 않겠다고

열열히 다투면서

열열히 잊지못해 증오하면서

친구여

개나리 꽃은 빨갛고 하얗던가

파랗고 하얗던가

가지마다 무수하게 달려있는

네가 말하는 소수파, 오 무서운 폭탄들이

어떻게 만발해

있는지 똑똑히 들여다보면서 개나리 꽃이 왜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는지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그러나 밤낮 달려가면서

긴 외투를 걸치고 해방촌 비탈진 길을

올라가면서

자유가 되던지 자유의 함정이 되던지

봄만 되면

틀림없이 만발없이 반역으로 달려가면서


《 동대신문 1973년 4.17字에서 옮김 》

※김창범 : 국어국문학과 67학번으로 시 발표 당시 재학생(4학년)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