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대한불교 천태종 운덕 대종사 인터뷰
  • 최고관리자 | 2021.10.07 10:30 | 조회 2085

    26년 총무원장 재임 중 160여 사찰 짓고 300만 신도 모아

    본교 ROTC 1기 출신으로 천태종을 한국 불교 양대 종단으로 키워

     

    충북 단양군 영춘면 소백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천태종 총본산 구인사는 수려한 산세를 끼고 산 밑에서부터 800고지에 이르기까지 사찰건물이 산 기슭 양쪽에 빼곡이 들어차 있다. 자그마치 60여동 쯤 되어보인다. 웅장한 대웅전을 비롯해 각 건물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사찰 건물을 대부분 짓고 한국불교 양대 종단으로 키운 주인공이 있다.

     

    전운덕 대종사 스님(속명 전종윤·84)이다. 동국대 경제과 59학번 출신이다. 그는 ROTC 1기 출신으로 육군 중위로 예편한 뒤 구인사 상월원각 대조사를 찾아 계를 받아 승려가 되었다. 그후 천태종 총무원장직을 6연임하면서 26년간 천태종을 우리나라 불교의 양대 종단으로 키웠다.

     

    전운덕 대종사를 첫 대면하자 스님의 귀가 유독 커서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노안의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이다. 요즘 다리를 다쳐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이 불편해 보일 뿐, 건강한 모습이다. 산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를 닦은 수행의 효험으로 보였다.

     

    구인사를 가려면 사찰 입구에 주차를 하고 산길을 올라야 한다.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어서 걷는 데는 불편하지 않다. 사찰의 초입에 박물관이 있는데 미리 들어가 정보를 입수하고 경내를 돌면 천태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같다. 산 위로 오르는 내내 사찰의 독특한 분위기와 수려한 산세,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다음은 전운덕 대종사와의 일문일답.

     

    -불가에 들어와 수계를 받으신 사연부터 말씀해주시지요.

    “1962년 대학을 졸업하고 ROTC 소위로 임관하자 28사단에 배치되었지요. 1965년 제대하고 잠시 고향 울진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예비사단에서 한달간 훈련을 받으라는 통보를 받고 66년 안동 36사단에 들어가 훈련을 받은 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구인사를 찾았습니다. 구인사를 찾은 것은 그곳에 생불이 계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석같이 이상한 끌림이 있어서 훈련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구인사를 찾은 것입니다. 나는 대학 재학시절, 경제과를 다니긴 했어도 불교에 관심이 많아서 불교 강의를 많이 듣고 불경에도 관심을 가졌었지요. 경제과를 지망한 것은 경세제민이라고 경제로 백성을 구제하는 것으로 알고 갔는데 돈벌고, 기업에 취직하는 내용이 주더군요. 내 생각과 달라서 불교공부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구인사에서 상월원각 대조사 스님을 만나자 운덕 스님은 순간적으로 이거다하고 구도의 길에 들어섰다. 맑고 깨끗한 모습의 상월원각 대조사는 흡사 산신령처럼 느껴졌다.

     

    대종사 스님이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시더군요.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말씀드렸더니 여기 구인사에서 기도하라고 하시더군요. 며칠 기도하다 나가려니 했는데, 7일째 되는날 새벽 어떤 환상을 보면서 전율할 정도로 오도(悟道)의 정기를 느꼈습니다. 마음의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 길로 머리를 깎겠다고 했습니다. 대조사 스님께서 운덕이란 법명을 내리시고, 그렇게 해서 산중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세속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이 어언 56년이 되었군요.”

     

    -그렇다면 천태종은 어떤 종교입니까.

    애국불교, 대중불교, 생활불교를 지향합니다. 주경야선을 실천하며 대중생활을 지향하는 특성을 지녔습니다. 세상의 만물은 무상하니 집착이 무의미하다는 제행무상을 비롯해, 제법무아(모든 법에는 내가 없다) 열반적정(욕심 버리고, 고요한 자리에 들어가라)이라는 3법을 지키지요. 천태종의 절은 시중에 많이 있습니다.”

     

    구인사는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이다. 1600년 전 중국의 천태지자 대사에 의해 개립(開立)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이 개창(開創)했다. 조선조의 억불 정책으로 소멸의 과정에 든 것을 중창조(重創祖)인 상월원각 대조사가 1945년 현재의 5층 대법당 자리에 초가삼간을 지어 수행하면서 중창(重創)하고, 전운덕 대종사가 1966년부터 원력을 쌓아 오늘에 이르렀다.

     

    전국 신도 수는 약 300만명. 스님은 450여명이다. 서울 관문사, 부산 삼광사, 분당 대광사, 대구 대성사와 동대사, 인천 황룡사, 대전 광수사, 광주 금강사, 울산 정광사 등 전국의 유명사찰 200여개소를 두고 있다. 이들 중 160개 사찰 건물을 전운덕 대종사가 다 지었다.

     

    구인사의 경우, 산 골짜기인지라 하수도 배수시설은 물론 홍수에 대비한 물 저장고 등 완벽에 가깝게 지었다. 그래서 심한 폭우가 쏟아져도 물 피해를 본 적이 없다. 건물의 전기 시설, 보일러 배치, 가스 배관 등 운덕 대종사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건물들은 전통사찰의 전각들과 달리 철근 한옥 전각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따라서 화재 위험이 없고, 견고한 특징이 있다.

     

    구인사의 대표적인 건물은 설법보전, 관음전, 대조사전, 총무원 청사, 광명전 등이다. 이중 중창조 상월원각 대조사의 존상을 봉안한 대조사전은 사찰건물군의 맨 위에 세워져있는데, 밖에서 보기에는 3층이지만 내부는 지붕까지 탁 트인 통층 구조로 되어 일반 건물의 7층 높이다. 내외장이 금박으로 장식돼 화려하고 장중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10년간의 불사로 200011월 낙성되어 많은 순례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대조사전 역시 전운덕 스님의 원력이 그대로 스며있다.

     

    경내에 강당과 요사채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강당마다 신도들이 들어와 있는데, 코로나 19 이후에는 그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여러 불교 종단 중 유일하게 무속신앙을 배척하고 있다. 그래서 산신각, 칠성각 등 무속과 관련된 전각이 없다. 현대 불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북한에도 천태종 불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2002년 개성에 본래 있었던 영통사 자리에서 복원 불사를 하였습니다. 전쟁 때 완전 파괴되어 터만 남은 자리에 200011월 현지 조사 후 북한의 조선경제협력위원회와 함께 복원 불사를 시작해 200510월 남북 공동으로 봉불식을 봉행했습니다.”

     

    천태종은 1대 종정 상월원각 대조사를 미륵이라 하여 종단의 이름을 미륵종으로 개칭하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과 고려의 천태종 법통을 잇는다는 방침 아래 천태종을 그대로 유지했다. 생활 속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생활불교, 대중불교를 지향하기 때문에 스님들도 일반 신도와 함께 직접 농사를 짓고, 울력을 하여 자급자족의 기틀을 마련한다(주경야선). 노동 자체를 수행으로 여기고 있다.

     

    조계종이 문중 중심으로 조직된 것과는 반대로 천태종은 조직 체계가 로마 카톨릭 교황청처럼 종정-총무원장 휘하의 단일 조직체계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일사불란의 정신 아래 교세 확장의 바람을 몰아가고 있다.

     

    스님들은 비구, 비구니 모두 비혼이다. 스님들은 지키지 못할 구족계를 받느니 계율의 핵심만 취한 십선계를 지킨다. 계율이 엄하고 질서가 잡혀있다. 스님들에게도 육식과 음주가 허용된다. 실제로 전운덕 대종사가 구인사를 찾은 총동창회 취재진을 단양의 한 음식점으로 초대해 만찬을 베풀었는데 스님은 동문들과 함께 회와 쏘가리 매운탕을 먹고, 가벼운 음주를 했다. 불음주계(不飮酒戒)가 없는 십선계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직접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지 고기를 먹지 말란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스님들이 고된 노동(수행)을 하기 때문에 육식을 해야 힘을 쓴다는 신체단련 정신에서 규율이 새롭게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천태종은 개인적으로 사찰을 창건하지 않는다고 한다. 타 종단처럼 스님이나 재력있는 불자가 창건하여 종단에 등록시키는 경우가 없이, 오직 총무원 주관으로 불사를 하여 주지스님을 파견한다. 그중 부산의 삼광사는 신도수가 50만명에 이른다. 한국의 대표적 사찰인 범어사보다 신도 수가 7-8배나 된다.

     

    -이렇게 천태종을 키운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스님 중에 나와 같은 장교 출신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포병장교 출신인데, 정확한 수치와 과학적 계산, 체계적인 조직력이 몸에 베어있지요.”

     

    이에 대해 배석한 운덕스님의 재가 상좌격인 주철수 법사(ROTC21)스님은 따뜻한 리더쉽, 공평무사한 일처리, 솔선수범하는 실천력이 큰 불사를 이룬 원동력이라고 소개했다.

     

    -모교를 다니시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신다면...

    경제원론을 가르치던 홍우 교수님이 강의 중 우리나라는 자원이 없고, 석유 한방울 나지 않은 나라라서 부국강병이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이것을 가지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인재 자원부국 자원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는 나중 상월원각 대조사 스님의 예언에서도 적중했고요(그는 상월원각 대조사의 예언자적 설법을 여러가지 소개했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 ROTC에 지원한 것은 동기생인 박준형(신라교역 회장) 동문이 한사코 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구 부잣집 아들인데, 날더러 쪽팔리는 사병으로 입대하느니 장교로 가라고 하더군요. 이화동에서 하숙을 하며 고기반찬이 아니면 밥을 안먹을 정도로 유복하게 지내던 친구의 진지한 권유가 힘이 되었지요. 그래서 ROTC 응시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ROTC를 지원하느냐고 질문하자 박 동문의 권유가 생각나서 기왕 국방의무를 수행하려면 졸병은 시시해서 가고 싶지 않고, 기왕이면 지휘관이 되기 위해 장교를 지망한다고 했지요. 그러자 두말 없이 알았다하고 도장을 찍어주더군요. 다른 학생들은 나라의 간성으로서 국가에 충성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어쩌고말하는데, 나는 그런 상투적인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품격과 권위가 묻어나면서도 자상함과 친절이 몸에 배었다. 음식점에서 일일이 후배들에게 매운탕을 접시에 담아 전달하고, 스스럼없이 막걸리를 권하는 모습이 다른 종교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탈권위적이지만 오히려 따뜻한 권위를 강화시켜주는 것 같다. 이런 자세가 큰 불사를 완성하고, 교세를 확장한 힘이 아닌가 싶다. 신화는 평범한 일상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같다.

     

    이계홍<65국문학과, 총동창회보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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