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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컬럼 - 백신을 맞았다
  • 최고관리자 | 2021.07.08 10:50 | 조회 1026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평화를


    김 택 근 (국문75) - 작가, 전 경향신문논설위원

     




    인도 바라나시는 죽어서 또는 죽기 위해서 찾아가는 곳이다. 순례자들도 이곳에서는 자신이 끌고 온 삶을 펼쳐들고 기도를 올린다. 4년 전 가을에 찾아간 바라나시는 더럽고 시끄러웠다. 낡은 도시에는 헐벗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골목마다 쓰레기가 넘쳐났고 소나 염소 같은 동물들이 어슬렁거렸다. 그럼에도 영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갠지스강 때문이었다. 오랜 옛날부터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가 갠지스 강물을 마시고 꽃을 피웠다. 어림 2000년 동안 강물은 사람들 마음속으로 흘러들었다.

     

    새벽 갠지스강은 안개가 자욱했다. 일행을 태운 보트가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안개 속에도 화장터 불빛이 보였다. 시신을 태우는 장작불이 강가의 어둠을 사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일생이 한 줌 재로 강물에 떠내려 갈 것이다.

     

    그는 과연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것인가. 해가 떠오르자 가트(강가의 계단식 목욕터)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지은 죄를 흐르는 물에 씻고 있었다. 강물은 더러웠다. 더러운 것들을 씻겨서 더러워졌을 것이다. 모래톱에서는 수행자 또는 순례자들이 해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누구는 머리를 모래에 박고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햇살을 맞고 있었다. 흡사 어머니 강 옆에서 재롱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갠지스강은 삶과 죽음, ()과 속()을 품고 흘렀다.

     

    이렇듯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강에 코로나19 재앙이 밀려왔다. 외신이 전하는 갠지스강의 모습은 흉측했다. 사망자가 폭증하자 시신을 강에 던지거나 모래톱에 묻었다. 기존 화장시설로는 밀려드는 주검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재가 될 수 없는 죽은 자들이 갠지스강 부근을 떠돌고 있었다. 신은 저런 가엾은 망자들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코로나19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을까. 서식지를 잃은 박쥐가 동굴 밖으로 나와 퍼뜨렸는지, 바이러스 실험실에서 연구원이 인위적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어느 날 무욕의 땅에 살고 있는 가난한 이들이 죽었고, 그 죽음에서 발생한 변이 바이러스가 다시 사람들을 해쳤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인간 생존의 그물망에 들어있고, 그물망 속의 그물코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갠지스강의 비극을 보며 새삼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실감한다.

     

    우리는 지구를 인류의 것이라 여기고 있다. 착각이다. 지구는 호모사피엔스의 서식지일 뿐이다. 지구 안에는 인간 말고도 억겁의 생명체가 있다. 인류는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극히 미세한 세포이며, 그래서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를 오가는 소립자일 수 있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죽음으로 저것이 죽는다. 일체 만물이 서로 의지하여 존재하는 연기(緣起)의 세계에서 나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어떤 것도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인연 따라 변한다. 그래서 영원한 것은 없으며 영원한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백신을 맞았다. 아스트라제네카에서 만든 약물 몇 방울이 내 몸에 들어왔다. 그 속에는 수많은 것들이 녹아있다. 인류를 살려야 한다는 실험실 연구원의 절박했던 시간이, 이름 없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가,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의 비명이,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산 자들의 눈물이, 약자들을 먼저 챙기는 배려와 사랑이, 종말론의 공포가, 의료진의 정성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흑사병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살았다면, 코로나19가 더 독했다면, 의학이 이렇듯 발달하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백신을 맞고 말없이 앉아있는 사람들. 후유증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사람들. 저들이 대기하는 20분 남짓의 시간 속에 흑백시비나 진영논리는 없다. 나는 저들과 함께 인류세의 지구인으로, 새천년으로 넘어온 한국인으로 초록별에 좀 더 머물 것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한 세상을 상상해보라. 우리 사는 곳이 얼마나 아름답고, 동시대를 함께 건너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우리는 머잖아 마스크를 벗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생명평화에 눈을 뜨는 신인류를 상상해본다. ‘내가 중심이 되어 남을 해치는이기적인 삶에 변화가 오리라 믿는다. 더 이상 한국이 기후악당들의 나라가 아니길 바란다. 갠지스강이 건강하면 한강이 노래한다. 우리 생애에 다시는 이런 팬데믹이 오지 않기를 소망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평화를!

     

    (2021.6.12. 경향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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